방탄소년단(BTS)의 경이로운 성공을 이야기할 때 흔히 유형적인 수사가 동원된다. 경제적으로 환산한 파급 효과가 얼마인지, 빌보드 차트에서 1위를 몇 번 했는지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BTS가 동세대의 문화적·사회적 경험에 미친 무형의 영향은 그것보다 더 근본적이고 중요할 수 있다.
국내 손꼽히는 한류 연구자인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홍석경 교수는 BTS가 열어젖힌 새로운 경험의 차원을 연구자의 시각에서 들여다봤다. BTS의 ‘러브 유어셀프’ 월드투어 서울, 파리, 런던, LA 공연을 따라가며 현장의 팬들을 만났다.
BTS가 왜 ‘새로운 시대의 상상력’인지 학술적인 통찰을 길어 올렸고 이를 최근 ‘BTS 길 위에서’라는 책으로 펴냈다. BTS 열풍의 이유를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이들에게 길잡이가 될 만하다.
홍 교수는 최근 전화 인터뷰에서 “BTS는 ‘로컬’이 ‘글로벌’과 만나는 사례를 보여줬고, 그 과정에서 인종적이고 젠더적으로 기존의 현상(status quo)을 흔들고 상상력을 넓혔다”고 말했다.
동아시아인의 얼굴을 지닌 BTS가 세계적 스타로 등장하면서 백인 중심의 인종적 상상력, 세계 속 아시아인들의 존재감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홍 교수는 BTS가 어떻게 한국과 동아시아인을 ‘매혹의 대상’으로 만들고 보편적 메시지를 전파하는 주체가 됐는지를 짚어 나간다.
RM을 제외하면 영어에 능숙하지 않은 BTS 멤버들이 오히려 언어의 위계를 흔드는 점도 주목한다. “(BTS는) 동아시아 사람이고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데도 쿨하다고 여겨지고 주눅 들지 않죠. 수많은 나라의 팬들은 ‘영어를 일부러 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한국말로 하고 번역하면 된다’고 말해줍니다.…그것이 주는 해방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BTS를 접하고 한국어를 배우려는 팬들이 늘어나고 있다. 홍 교수의 비유에 따르면, 영어와 프랑스어가 셰익스피어와 몰리에르의 언어라면 한국어는 BTS의 언어가 된 셈이다. 홍 교수는 “한국에서 하는 한류 관련 국제 콘퍼런스에서 한국어가 주된 언어가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도 말했다.
화장을 하고 스스럼없이 친밀함을 보여주는 등 BTS가 보여주는 ‘부드러운 남성성’은 기존의 지배적인 남성성을 뒤흔드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새로운 차원을 열며 나아가는 BTS를 두고 홍 교수는 “길 위에서 성장했고 없던 길을 냈다”고 표현했다. BTS의 성장담을 사회문화적 지평에서 분석한 이 책의 제목이 ‘길 위에서’인 이유기도 하다.
그는 “저도 길 위에서 이들을 쫓아다니면서 많은 것을 봤다”며 “이런 것들이 중의적으로 들어있는 제목”이라고 말했다.
길 위에서 BTS는 전 지구적 청년 세대의 불안, 우울과 교감하며 성장해왔다. 부모 세대보다 불확실해진 삶의 조건에서 생존 경쟁에 내몰린 청년들에게 “애쓰지 좀 말아, 져도 괜찮아”(불타오르네)라며 ‘자신을 사랑하자’고 말했다.
이제는 톱스타로 세계적 성공을 거둔 BTS가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도 관심이다. 홍 교수는 “이들이 굉장히 ‘험블’하게 남아있는 데 성공한 것 같아 여전히 소구성이 높다고 본다”고 짚었다.
세계 속의 한류를 꾸준히 연구해온 그는 “BTS, 그리고 K팝을 통해 지역적인 문화가 어떻게 글로벌 문화 속으로 들어가고 그 일부를 형성하는가를 관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넷플릭스를 통해 한국 드라마가 전세계 대중문화 속으로 들어가는 양상과 ‘K-뷰티’ 등을 연구하고 있다.
홍 교수는 BTS 세계의 표피 속으로 들어가면서도 “관찰자의 시선을 놓치지 않으려 애써 왔다”고 책에서 강조했다. 그렇지만 BTS가 팀으로 함께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도 감동적이었다고. “신자유주의적인 규범, 경쟁을 요구하는 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보면 거꾸로 하면서 성공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감동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