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교내 이성교제 금지’ 규정을 위반한 해군사관학교 생도 40여 명.
지난해 말 위반 사실을 스스로 신고했지만, 중징계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이들은 벌점과 함께 11주간 외출·외박이 제한되는 등 근신 처분을 받았는데요.
해사 생활예규는 1학년 생도의 경우 다른 학년은 물론 동급생과의 이성 교제도 불허하고 있습니다.
육사·공사 등 다른 사관학교 역시 신입생도와 상급생도 간 연애는 명백한 금기사항입니다.
일명 ‘3금 (금혼·금주·금연) 제도’를 손보면서 이성 교제를 선별적으로 인정한 대신 생도 사이의 교제 범위와 행동 지침을 못 박은 거죠.
이를 두고 일부 누리꾼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인데요.
해사 관계자는 “1학년 생도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상명하복 문화가 강한 군대조직에서 새내기가 선배의 ‘사귀자’는 요청을 거절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 같은 규율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계속되자 공사는 지난해부터 1학년 생도 끼리 연애는 허락했습니다.
육사의 경우 교수·교관·훈육 요원과의 경우를 제외한 1학년 생도의 교내 연애는 허용하는 쪽으로 생활예규 개정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군 소식통은 “사랑의 감정을 1학년이라는 이유로 막는 것에 무리가 있다고 판단해 변화를 시도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해사 역시 1학년의 이성교제 금지 규정 자체를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데요.
같은 생도 신분임에도 사관학교마다 적용되는 규정이 들쑥날쑥한 것이 사실입니다.
군마다 오랜 전통과 고유 정서가 있는 만큼 생활예규 차이는 불가피하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의 의견인데요.
권재상 공사 명예교수는 “군에 따라 장교에게 요구되는 리더십에 약간씩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갖춰야 할 덕목, 필요한 생활 태도도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정재극 연성대 군사학과 교수는 “일반대학에서 선후배가 사귀고 헤어지다 문제가 생겨도 뉴스화되진 않겠지만 사관학교에서 그런 문제가 일어난다면 국민이 불안해할 것”이라며 “세금으로 운영되는 학교인데다, 사기를 먹고 사는 조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짚었는데요.
다만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도 있는 만큼 각 군별 특성을 고려하되 공통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한다는 견해도 나옵니다.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는 “기준을 마련할 때는 관련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공청회 등이 필요하다”며 “서로의 생각을 조율해 나가는 과정에서 합의가 진전된다면 어느 정도 기준안이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대학생이자 예비 장교라는 두 가지 신분을 가진 사관생도는 과거 ‘3금 제도’로 대표되는 엄격한 통제를 받았지만, 최근에는 규제가 점점 완화되는 추세.
지난 2014년 주말 외박 때 여자친구와 성관계를 했다는 이유로 퇴학당한 육사 생도가 대법원 판결을 통해 구제된 이후 논의는 본격화됐는데요.
흡연과 결혼은 아직 금기로 남아있지만, 영외 사복 차림 등 일정 조건 하에 음주가 가능해졌고 ‘3금 제도’라는 명칭 역시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21세 이상이면 혼인도 가능한 미국 등 외국 사관학교와 비교하면 여전히 보수적인 것이 현실인데요.
2019년 당시 최재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사 생도의 평일 외출 금지 등 각종 제약을 들어 “벤치마킹 대상이었던 미국 웨스트포인트는 이미 ‘3금’을 폐지한 지 오래지만, 우리 사관생도들은 자기 절제와 금욕이라는 명분 아래 기본권 제한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지적했죠.
일각에서는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비판을 받는 사관학교 학제에도 변화가 필요하단 목소리가 나옵니다.
최기일 교수는 “사관생도가 그 교육을 4년 받고 임관했을 때 ‘엘리트 정예 장교’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사관학교의 기본 운영이나 커리큘럼을 대폭 개선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자유가 주어진다면 그에 따르는 책임 역시 무겁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할 텐데요.
육사 생도 음주가 일부 용인된 이후 교내 성폭행 등 부적절한 처신이 잇따르자 제한을 다시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 만큼, 일탈 행위는 일벌백계해야 기강이 바로 설 수 있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육사 출신인 김세진 경제사회연구원 미래분과 전문위원은 “어떤 것도 국가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를 길러낸다는 목표에 앞설 수는 없다”며 “군인이라는 업의 본질과 인권이라는 가치가 일부 상충할 수 있지만, 적절한 균형감각을 유지하며 시대 흐름에 맞춰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