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이 다시 정권을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의 인도적 위기 우려 속에 미국이 동결한 아프간 정부 자금이 논란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미국은 탈레반을 합법 정부로 인정하지 않은 채 자금 동결을 유지하지만 인도적 위기를 막으려면 이를 풀어야 한다는 주문이 미국에서도 나오고 있다.
40명이 넘은 미국 하원의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20일 조 바이든 대통령과 재닛 옐런 재무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동결 자금 해제를 요구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다.
이들은 아프간의 금융 시스템에 대한 국제적 제약을 완화하지 않으면 아프간인의 경제적 고통과 인도적 지원의 붕괴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미국이 현재 정책을 유지하면 지난 20년간 아프간 전쟁에서 잃은 것보다 더 많은 민간인 사망자가 향후 1년간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프간 정부의 해외 자산은 90억 달러(10조7천억원)가 넘는데, 이 중 70억 달러가 미국에 예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아프간전 종전을 위해 미군을 철수하던 도중이던 지난 8월 탈레반이 아프간을 재장악하자 아프간 중앙은행이 미국에 예치한 이 자산을 동결했다.
미국은 탈레반이 포용적 정부 구성, 소수자와 여성 인권 보장, 테러단체와 관계 절연 등 조처를 하지 않으면 정권 인정은 물론 자금 동결 해제도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아프간 경제와 금융 시스템의 붕괴 가능성이 제기되고, 가뭄과 전염병 대유행, 해외 원조 중단으로 상황이 악화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아프간 통화 가치가 10% 넘게 하락했다는 보도가 있는가 하면, 유엔은 아프간 금융 시스템이 실패하면 경제가 30% 위축될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놨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최근 아프간 인구 4천만 명 중 2천400만 명이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탈레반은 지난달 말 미국 대표단과 이틀간 가진 회담에서 동결된 해외 자산 즉시 해제 및 제재 종식을 요구했다.
또 이슬람권 57개국이 속한 이슬람협력기구(OIC)는 19일 국제사회가 당장 아프간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지난달 아프간 난민 캠프의 어린이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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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아프간에 대한 인도적 지원 필요성에 공감하며 방법을 찾고 있다면서도 동결 자금 해제에는 여전히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재무부 당국자는 아프간의 금융 문제가 동결 자금 해제로 풀린다는 보장이 없고, 탈레반이 이 자금을 인도적 지원 이외 용도로 사용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당국자는 아프간 자금을 동결한 다른 동맹들과 함께 이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 동맹 중 탈레반을 합법 정부로 인정한 나라는 아직 없다.
아프간 정부의 경제 자문을 활동 중인 샤 메라비 미국 몽고메리대 교수는 WP에 동결 해제가 아프간 경제 붕괴를 막는 데 필수적이라면서 그러지 않으면 유럽에서 대규모 난민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모든 자금의 무조건적인 해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면서 이 자금이 적절하게 사용되는 것을 보장하기 위해 미 당국의 감시하에 조금씩 해제하는 방안을 권고했다.
아프간의 길거리 시장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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